두 번째 기회에 관하여

  •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는 히스테리적 비참함을 평범한 인간적 불행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 두번째 기회는 저 홀로 혹은 단지 한 사람의 결심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 곧 당신을 그 과정으로 이끌어주고, 심지어 고난을 겪더라도 당신이 자신에게 정직하도록 붙잡아주는 누군가에게 달려 있다.
  •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로지 당신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 “issue”라는 단어는…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 혹은 결과물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름이 따른 출현이나 유동적인 움직임을 가리키며, 사물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고, 움직이고, 구부러지고, 꼬이고, 터져 나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단어는 … 어떤 과정의 성과나 종결에 대한 것이다. … 이 단어는 끝과 시작을, 무언가가 끝나가는데 무언가는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결합하는데, … 생애 주기 전체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실”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서 다루는 생애 주기는 한 개인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번식 능력을 전승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두번째 기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 “시간을 만회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사유하는 것이며, 실제로 구원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탐구하는 것이다.
  • 두 번째 기회는 항상 타인의 도움에 달려있고, 유용하고 활기를 주는 교류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에 달려 있다. 두 번째 기회는 충돌을 협력으로 변형시키고, 자기만족을 새로운 형태의 의존으로 바꾸는 데서 비롯한다. 개종 경험과 다르지 않은 이 두 번째 기회를 위해서는 이전의 많은 확신들을 버리고, 자아의 본질이라 여긴 것들을 재고해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 즉 두번째 기회는 우리가 잠재력이라고 여기는 것을 담고 있다. 두 번째 기회는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거나 더 많은 것을 삶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생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기회이다.
  • 기독교 전통에서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는 것은 구원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구원을 (신의)선물로 간주하든 아니면 인간의 성취로 간주하든, 즉 구원이 개인의 능력 범위 안에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 우리가 태어난 이 삶, 즉 첫 번째 기회는 (더 나아지는) 두 번째 기회가 실현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를 첫 번째 기회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걷고, 말하고, 읽고, 섹스하는 것을 배우는 첫 경험을 첫 번째 기회라고 말하지 않듯, 신자들은 원죄 상태가 첫 번째 기회라 말하는 경향이 있다.
  • 사람들은 두 번째 기회를 얻을 때쯤이면 항상 더 나이들어 있다, 두 번째 기회는 결코 첫 번째와 같지 않으며, 우리가 말했듯 이는 두 번째 기회가 부분적으로 ‘첫 번째 기회란 이런 것을 위한 것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두 번째 기회로 경험한다면, 반복이 단순히 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계적이거나 임의적이거나 아무 의미도 없는 반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왜냐하면 즉흥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반복이며, 이때 우리는 삶의 단순한 희생자나 연기자가 아닌 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기회 개념은 우리가 삶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삶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주체성의 감각을 복구하고 또 촉진한다. 좋든 나쁘든 두 번째 기회는 다른 무엇보다 삶을 숙달할 수 있다고 믿도록 도와주는데, 숙달은 더 좋아지든 나빠지든 간에 삶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인생이 우리가 바꾸고, 고치고, 더 나아지게 할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할 거라 생각하는 않는다면, 삶을 그저 어긋나 있고 일회적이고 무상한 것으로 보일 것이며, 우리 자신은 선택이나 잠재력, 판단이나 지향이 없는 피조물이 될 것이다. 만약 더 이상 회복을, 처벌이나 구원 혹은 죄책감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유지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종종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시작할수 있다.
  • 정신분석학은 우리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경험이 외상이라고 주장한다. 외상은 기억해내어 주의 깊은 청자에게 말함으로써 이를 재창조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통해야만 비로소 경험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기회가 없다면 첫 번째 기회는 끊임없이 출몰하는 박해 경험이 되고, 그리하여 미래의 경험까지 빼앗기는 경험이 된다(이것이 바로 외상의 정의 중 하나이다). 확실히 프로이트에게 성인기란 아동기의 두번째 기회로서 아동기의 욕망과 외상을 다시 되찾아 뭔가 생성하는 힘으로 바꾸고 미래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 두 번째 기회의 단점은 좌절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점은 아이가 더 이상 환상 속 인물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그래서 자기충족성의 괴로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는 엄마와 자신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 안에 본능적 욕구의 만족을 말 그대로 넘어서는 훨씬 더 많은 게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본능적 욕구의 만족이 상황의 핵심이라서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로 돌아온다. 두 번째 기회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 외부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물론 이는 장점만큼 단점도 있다.
  • 어린 시절에 필요한 것들과 우리 삶이 의지하고 있는 것(사람)들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두 번째 기회를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원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통제할 필요가 없고, 통제하고 있다고 혹은 통제해야 한다고 믿을 필요도 없이 기다릴 수 있을때에만 우리는 두 번째 기회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 … 원한은 두 번째 기회로부터의 도피처이다.
  • 무엇보다 두 번째 기회는 항상 기억하는 행위이다. 두 번째 기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작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제 보니 첫 번째 기회였구나 하는 것을 기억 속에서 지금 되살리는 것이다. 우리가 두 번째 기회라 여기는 것은 인식할 때, 비록 그게 무엇인지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두 번째 기회를 만들거나 잡거나 받아들일 때 우리가 하는것 중 하나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를테면, 어느 정도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 일련의 기회들로 이해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과거를 돌이켜보며 우리는 실망시켰던 경험이 사실은 놓친 기회였으며, 이제 어떤 식으로든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때는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던 어떤 면에서는 선택된 것일 수도 있고, 이제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두 번째 기회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를 불가피하게 과거에 대한 역사가, 해석자, 독자로 만든다. … 삶은 우연하고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일종의 서사, 즉 반복과 회귀의 이야기가 될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 두 번째 기회라는 개념은 순수함보다 경험을 더 높이 치면서 이해력과 역량을 하나로 엮어 우리를 안심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이야기는 바로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있어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 과거가 우리의 가장 큰 자원이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선한 것과 신과 선한 운명과 선한 자연법이 존재하고, 믿음과 희망과 쇄신의 세계가 존재하며, 이 안에서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 다소간의 자유가 있다.
  • 두 번째 기회가 있는 삶은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 삶이다. 어떤 지식이나 이해 혹은 접근을 통해 과거가 – 우리의 욕망과 야망이 – 회복되고, 재작업되고, 우리에게 유리하게 수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기회를 가지거나 만들거나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을 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어떤 식으로든 미래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두 번째 기회가 환영할 만한 기회로 느껴지지 않을 때 이는 공포가 된다. 두 번째 기회는 항상 우리를 다시 한번 첫 번째 기회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두 번째 기회가 제공하는 알 수 없는 미래는 첫 번째 기회가 우리에게 남겨둔 알고 있는 미래로 점유되고 대체된다.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두 번째 기회는 항상 오래된 문제를 건드린다. … 증상들은 습관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기회의 적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갈등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증상이 우리를 치명적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 더 커다란 회복을 위하여 지금 복구되는 것은 외상적 기억이다. … 두 번째 기회가 매력적이지 않을 때, 그것은 첫 번째 기회와 똑같은 걸 넘어 오히려 더 나쁜 것처럼 들린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은 (회복이라는) 두 번째 기회에 대한 믿음에 항상 담겨 있는 두려움과 신뢰와 자신감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 두 번째 기회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결코 알지 못한다. 두 번째 기회는 갈망하고 두려워했던,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미래로 이끈다(두 번째 기회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미래, 바랄 만한 미래를 믿는 방식이다). 두 번째 기회는 항상 첫 번째 기회를 다시 기술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앞에서 보았듯 프로이트에게 두 번째 기회는 언제나 위험했던 첫 번째 기회는 줄곧 우리에게 외상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전형적인 정신분석적 관점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 기회를 우리를 위협하는 것과 우리가 원했던 것 – 이 둘은 참으로 자주 함께 등장하는데 – 을 관리하는 첫 번째 기회로 암묵적으로나마 기술하는 것은 진정 흥미롭다. 기괴한 것이 평범해지고 위반이 규범이 된다. 의식(儀式)을 방해한다고 여겼던 일이 의식의 일부가 된다. 방어하며 밀어내는 대신 포함시킨다(여기서 처벌은 없다).
  • 이러한 두 번째 기회에서 최초의 외상은 중요한 기여를 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 일단 믿을 만하게 –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되자 통합을 이룬다. … 외상을 승리로 바꾸는 두 번째 기회는 … 그 혼란을 의식 안으로 흡수 혹은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 첫 번째 기회는 무언가를 배제한다. 혹은 배제하는 데 사용한다. 두 번째 기회는 잠재성을 다시 개방하고 복구한다. 이 우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고 이 이야기를 우화로 만든 것은 두 번째 기회는 항상 애매하고 그 결과가 불확실하며, 의미 역시 모호하다는 것이다. … 우리는 두 번째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기회가 마지막이기를 원한다.
  • 따라서 두 번째 기회라는 생각에 그저 희열을 느끼거나 안심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은 두 번째 기회가 좋은 기회도 되지만 일종의 알리바이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 프로이트가 이른바 “반복강박”에 대해서 썼을 때, 그리고 위니코트가 “충분히 좋은 보살핌”안에서의 발달이 반복과 강박 모두에 대한 암묵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자신이 따르는 결정론적 이론(우리 삶은 본능으로 추동되고, 생존과 번식에 몰두하여, 피할 수 없는 생애 주기에 따른다는 것) 속에서 자유와 주체성과 선택과 쾌락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묻고 있다. 아울러 이 둘은 우리가 무언가를 다시 하고 있을 때, 다시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다시 하기를 원하거나 다시 할 수밖에 없을 때, 과연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두 번째 기회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외상의 발달 과정을 정지시키기 때문에 타고난 발달 과정 그 자체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두 번째 기회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반복은 그저 같은 짓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쇄신하고 즉흥적으로 다르게 행동하며, 새로운 일을 하고 기존의 제약 내에서만 뭔가 다르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은 필연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아직 무덤에 눕지 못한 유령처럼, 신비가 풀리고 주문이 깨지기 전까지 이들은 쉬지 못한다.” … “신비가 풀리고 주문이 깨지는” … 프로이트는 과거에 대해, 너무도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해하기이고 우리는 이해할 수만 있다면 미래가 과거의 숨 막히는 최면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말한다.
  • 돌이켜보면 과거는 기술되고 재기술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들 – 새로운 경험들, 회피했던 실험들, 외면했던 기회들, 도전하지 않았던 위험들, 스스로 망치고 포기해버린 좋은 일들 – 로 가득하다. 모든 기술에는 재기술이라는 나름의 두 번째 기회가 있다. 일종의 세속적 연금술인 정신분석적 재기술이라는 계획에서 미래의 이익으로 변형될 수 있다. 돌이켜볼 때 첫 번째 기회나 놓친 기회처럼 보이는 것이 – 심지어 외상이라도 – 두 번째 기회를 만들기 위한 재료일 수 있다. 되돌아보면, 적어도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실수했다거나 좌절을 겪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에 더 좋게 실현될 수도 있는 서로 갈등하는 다양한 의도들을 드러냈던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 두 번째 기회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조건중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불편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갈등이 있은 이후에 충분히 좋은 보상을 받는 경험이 쌓이는 일일 것이다.
5월 31, 2026이음의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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