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하죠?

종일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마모된 마음을 알아주고, 그 텅 빈 공허함을 다정하게 끌어안는 환승의 시간

덜컹거리는 전동차의 소음과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어둑해진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유리에 비친 한 사람의 얼굴과 마주합니다. 어깨까지 내려앉은 피로, 초점 없이 텅 빈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낯설면서도 어딘가 애틋해 보이는 그 얼굴은, 오늘 하루 치열하게 세상을 견뎌낸 뒤 내밀하게 드러난 나의 진짜 초상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참으로 고단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에 오르기 위해 각자의 ‘가면(Persona)’을 집어 듭니다. 직장 상사 앞에서 짓는 활기찬 미소, 거래처 직원에게 보이는 친절한 눈웃음, 동료들의 농담에 맞장구치는 가벼운 웃음소리까지. 이처럼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상황에 맞게 나의 표정을 연기하며 우리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감정 노동’입니다. 종일 그 무거운 가면을 쓰고 타인의 기대라는 궤도를 도느라, 우리의 내면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조금씩 마모되고 닳아갑니다.

그러나, 퇴근길 지하철 창가에 비춰지는 그 지친 무표정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보내는 소리없는 응원이자, 온전한 나로 돌아가려는 회복의 시작일수도 있습니다. 문득 흔들리는 전동차 안, 낯선 나의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면 따듯한 미소로 말을 건네보세요. “애썼다…” 그리고 한번더 외쳐보세요. “내가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하죠?”

– “내가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하죠?” (영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중에서)

4월 27, 2026이음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