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됨’을 위한 분투

불안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그리고 불안과 공포는 무엇이 다를까요?

불안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그리고 불안과 공포는 무엇이 다를까요?

공포는 대상을 알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공포를 느낍니다. 거대한 폭압 앞에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압도당하는 무기력함, 그것이 공포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안은 다릅니다. 불안은 대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흔들리는지, 왜 마음이 떨리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사로잡히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불안은 더 깊고 오래 지속됩니다.
대상을 알 수 없기에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어렵고,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무너뜨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불안의 대상조차 알 수 없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어쩌면 시작은 아주 작은 질문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너를 불안하게 하니?”
불안은 종종 우리 안의 결핍을 드러냅니다. 즉 특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말입니다.

요즘 인상 깊게 본 드라마(우리는 모두 우리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에서 형이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그러자 동생이 대답합니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동생의 불안은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영화인에서, 명실상부한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동생의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과한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타인에 대한 험담으로 스스로의 초라함을 감추기도 합니다.
결국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불안을 억압된 욕망과 연결했고,
자크 라캉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과 인정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고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불안 역시 ‘인정’이라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들에 핀 꽃 한 송이는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만의 색과 향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인정받아야만 안심할 수 있을까요?.
왜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할까요?
어쩌면 우리를 가장 깊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인정투쟁을 잠시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의 불안은 조금씩 옅어질 것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의 모습을 축복해주세요.
오히려 누군가의 인정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나의 나됨’을 위해 분투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불안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5월 23, 2026이음의 시선